Twelve moons 제9회 최용선 개인전
- 기간 2026.06.01 ~ 2026.06.12
- 장소 2 전시실
- 대상 전연령
- 전시부문 대관전시
- 관람료 무료
- 문의 02-760-9793
-
안내
관람시간
10:00 ~ 18:00(입장마감 17:30)
* 6. 13.(토) 전시시간 10:00 ~ 12:00
일요일 휴관
상세내용
작품이 발산하는 덩어리의 무게감은 단순히 시각적인 웅장함을 넘어,
우주라는 거대한 개념에 맞서는 작은 존재, 인간 서사의 외침을 담고 있다.
형상과 형태를 통해 구현된 거리감은 관객에게 손에 잡히지 않는
‘공간감’과 그에서 비롯된 ‘무게감’을 선사할 것이다.
“이 작품이 거대한 우주와 공간에 대항하는 작은 인간의 저항으로 남길 바란다.”
본 작품은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겸허하면서도 강인한 지점을 향해 간다.
결국 인류의 문명을 가장 낭만적으로 남길 수 있는 수단인 ‘예술’을 통하여,
그리고 ‘12개의 달’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재구성된 시간과 공간의 미학, 고요의 무게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인간’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우주는 시시각각 팽창하며 변모하는 유동적인 존재인 동시에,
수십억 년 동안 본질을 유지하는 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 ‘미지의 거대’를 인간은 부술 수도, 지배할 수도 없다. 거스를 수조차 없다.
인간은 그저 찰나를 살다가는, ‘시간 흐름 속의 작은 일렁임’에 불과하다.
우리는 결코 그 공간을 완벽하게 소유하거나 묘사할 수는 없다.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 관측 불가의 영역에 ‘흔적’을 남길 뿐이다.
본 작품은 인간이 가진 인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심연과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경외감을 표현함과 동시에,
그 거대한 질서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담았다.
결론적으로 이 작업은, 거대한 공간이 되어버린 시간의 퇴적물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관객은 12개의 조형을 통해 달과 나 사이의 텅 빈 공간을
개개인의 사상이나 추억, 미련 따위의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채워나간다.
이것은 우주라는 거대한 서사 앞에 선 작은 인간이 던지는
가장 정중하고도 무례한, 사소하면서도 묵직한 저항이다.
이 금속의 투박한 저항이 누군가를 미지에 대한 탐구에 눈뜨게 할지도 모르고,
그 누군가는 이 작품을 통한 호기심 하나만을 손에 쥐고서 우주를 향해 갈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
하나의 목숨이 다음의 목숨으로, 하나의 세대가 다음의 세대로.
지금 당장 우주는 가기 쉬운 곳이 아니다.
하지만 100년 전의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던 우주 탐사가,
지금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나아가고 있다.
미지의 무언가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이자 특권이다.
그 저주와 특권에 대한 나의 의지를, 본 작품에 담아낸 것이다.
최용선의 전시에서 우리는 ‘달’이라는 관습적 형상에 비관습적 형태가 맞서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맞섬은 가장 멀리 떨어지고 파편화된 개체로부터
가장 유사하고 군집화된 형태로까지 재귀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우선 달이 가진 ‘구’의 형태, 심지어 ‘원’의 형태도 아닌 것들을 보자.
평면에 눌려진 그 형태는 때론 정액, 침, 고름 같은
일종의 체액의 형상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알루미늄은 달에게 투사된 순수함을 자신의 색으로 쉽게 환기시키지만,
동시에 부패된 것 같이 착색된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 아브젝트한 부분들은 서로 접합되며 점차 크기와 구조를 갖춘다.
그렇게 다시 원과 구의 형태로 되돌아가면,
그 달은 우리에게 익숙한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
아브젝트한 부분들이 우글거리는 군체에 가깝다.
여기서 ‘아브젝트하다’라고 말한 것은
작가의 서술에서 직접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제작하는 과정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알루미늄의 경화를 물로 급속히 하는 과정…
알루미늄을 녹인 용융물이 물을 급속도로 달구며 끓기 시작하고,
그 끓음은 자체의 움직임으로 예측하지 못한 조형을 완성시켜준다.”
고체를 녹여 액체로 만들고 그것을 또 다른 액체와 마주하는 과정에 내재된 파괴에 가까운 변화,
이는 최용선 작업의 특수한 제작 방법론일 뿐만 아니라
만들기 자체에 내재된 폭력이기도 하다.
하나의 개체로 이름되기 이전의 상태,
시각장 안에서 ‘어둠’이라고 불리며 인식론에서 ‘잡다’라고 불리는 곳에서
하나의 형태를 끌어내고 형상으로 인식해내는 조형예술은
그 안에 하나의 폭력을 감수하고 있다.
우리가 ‘달’을 여전히 예술적 형상으로 사용한다면,
기호로서 달에 축적된 관습적 감정과 관념을 반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무언가를 드러내고 이름하는 빛의 폭력을 상대화할 수 있는 다른 힘을 그것에서 찾기 위함일 것이다.
이여로 평론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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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